아스팔트 위, 스스로 이름을 선택한 생명 인구 66만여 명의 제주도는 서울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도로 보급률이 높은 곳이다. 도심과 해안선은 물론이고 중산간 지역 깊숙한 곳까지 포장도로가 촘촘하게 뻗어 있다. 이토록 고도화된 교통망 이면에는 로드킬이라는 참혹한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노루나 고양이 같은 비교적 몸집이 큰 동물들의 희생은 그나마 통계로라도 남지만, 양서류나 파충류처럼 작고 연약한 생명체들은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차가운 도로 위에서 사라지기 일쑤다.
신간 ‘알리트: 어느 작은 개구리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비극적인 개구리의 죽음에서 서사를 시작한다. 등에 알을 업고 부화할 때까지 정성껏 돌보던 수컷 산파개구리 한 마리가 질주하는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는다. 젖은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물가에 닿은 수컷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그의 등에서 새로운 생명이 깨어난다. 물살에 휩쓸려 강으로 나아간 이 작은 올챙이 주인공은 이름을 묻는 연어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자신의 이름은 ‘알리트’라고 말이다.
작고 어린 존재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이름을 택하는 이 장면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주인공의 아빠를 죽음으로 내몬 자동차는 동물들 사이에서 ‘레탈리트’라 불렸다. 이는 치명적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레탈(létal)’에 접미사가 붙은 형태일 것이다. 올챙이가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단어 중 하나인 이 죽음의 언어에서, 주인공은 죽음을 의미하는 음소를 과감히 걷어내고 생명의 음소만을 남겨 스스로를 호명했다. 기필코 살아남겠다는 강렬한 생존의 선언인 셈이다. 실제로 산파개구리를 뜻하는 프랑스어이기도 한 알리트(Alyte)는 신화 속 영웅의 이름처럼 묘한 힘을 지닌다. 주인공은 물과 땅, 숲을 오가며 숱한 동료들과 연대하고, 결국 아빠의 목숨을 앗아간 레탈리트의 파괴적인 세계에 제동을 걸 만큼 단단하고 용감하게 성장한다.
화려한 조명 뒤에 갇힌 어느 팝스타의 초상 무자비한 시스템에 짓눌린 취약한 존재의 투쟁은 비단 생태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캔디스 윌의 소설 ‘울트라내추럴(Ultranatural)’은 현대 자본주의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질식해 가는 한 인간의 삶을 조명한다. 가난과 두려움 속에서 자라난 소녀 레이시(혹은 러브)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팝스타로 성장하는지를 추적하는 이 작품은, 한 인간이 한낱 스크린 속 예술이나 순수한 미디어 그 자체로 전락해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다.
작품은 짐짓 허세스럽지 않으면서도 수려한 문체로 십 대 초반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러브의 불안정한 내면을 섬세하게 파고든다. 독자는 온갖 역경과 실수, 그리고 성취의 순간들을 넘나드는 그녀의 삶을 마치 친한 친구의 손을 잡고 걷는 듯한 기분으로 함께 경험하게 된다. 러브가 현실 감각을 잃고 자아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그녀를 지탱하는 유일한 끈은 절친한 친구 캐리앤이다. 러브는 캐리앤과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든 자신의 본질을 부여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신성한 존재와 맞닿아 있는 캐리앤과 달리 러브는 세상과 온전한 관계를 맺기 위해 오컬트에까지 눈을 돌리지만,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녀가 행사할 수 있는 주체성은 점점 쪼그라든다. 결국 그녀를 속박하는 수많은 감시자와 포획자들이 닦아놓은 길을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마법 같았던 우정의 연결고리마저 희미해지고 만다.
얽히고설킨 매듭을 품어내는 윤리적 시선 두 작품은 표면적으로 전혀 다른 층위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 보이지만, 폭력적인 환경 속에서 자아를 잃지 않으려는 절절한 생존기라는 점에서 논리적 궤를 같이한다. 소쩍새의 위협으로부터 알리트를 숨겨준 거대한 참나무 ‘악손’은 개구리라는 이름에 ‘풀리지 않는 매듭’이라는 아름다운 뜻이 담겨 있다고 일러준다. 인간이 만든 레탈리트는 길이 막히면 뚫고 위험을 제거해 버리는 통제와 해결의 논리를 따르지만, 야생의 삶은 다르다. 그곳에는 완벽하고 깔끔한 해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든 포식자에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과 타 종과의 얽힘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꼭대기에 선 러브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연예인을 직접적으로 모델 삼은 것은 아니지만,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연상시키는 곡의 샘플링이나 앨범 제목(‘I Got It (U Take It)’)에서 알 수 있듯 이는 대중의 오락거리로 소비되며 상아탑에 갇힌 수많은 아역 스타들의 보편적인 비극을 대변한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일종의 광기가 필요하다는 러브의 서늘한 독백은 소설 내내 불길한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과도한 스케줄과 약물 사용으로 흐릿해진 시간의 경계 속에서도 인간적인 연결을 갈구하는 그녀의 절박함은, 깔끔하게 재단된 상품이 되기를 강요하는 쇼비즈니스 세계에서 풀리지 않는 매듭으로 남으려는 발버둥과 같다.
우리는 언제나 위험을 제거하고 타자의 삶을 오락으로 소비하는 빠르고 편안한 세계에 익숙해져 있다. 알리트의 고군분투와 러브의 심리적 붕괴를 지켜보는 독자는 묘한 죄책감과 동시에 깊은 연민을 느끼게 된다. 관음증적인 시선을 거두고 상처 입은 존재들의 피부 깊숙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이 서사들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책 속의 인물들이 어느 한적한 정원에서 무사히 평안을 찾았기를 기도하게 만든다. 비인간 존재와 인간의 삶 모두, 결국은 누군가의 일방적인 통제가 아니라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매듭을 그대로 껴안을 때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음을 문학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