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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상 밖 프라이드 아이콘: 캠프 감성 가득한 ‘분노의 질주’

나는 운전을 하지 못하는 42세 레즈비언 여성이다. 이왕 말문을 연 김에 솔직히 말하자면, 거대한 차를 타고 지나치게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을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미국에서는 셋 중 한 명 꼴이다. 이런 나를 보면, ‘분노의 질주(Fast & Furious)’ 시리즈가 내 취향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첫 편은 2001년에 개봉했으며, 지금까지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혹시라도 익숙하지 않은 이들을 위해 간단히 말하자면, 이 시리즈는 거리 레이서와 아웃사이더들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동차를 광속으로 몰고 악당들을 때려잡는 이야기다.

나는 이 영화의 타깃 관객층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팬이다. 처음 ‘도쿄 드리프트'(2006)를 비행기 안에서 본 이후, 이 시리즈에 푹 빠졌다. 물론 이 영화들이 상당히 허술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네 살짜리 우리 아이도 줄거리를 쓸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하지만 그만큼 유쾌하고, 무엇보다 놀라울 정도로 ‘퀴어’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영화의 과장된 연출이다. 이 시리즈는 영화계의 드래그 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도로 ‘캠프’하다. 예를 들어 ‘분노의 질주 9’에서는 Pontiac Fiero를 우주로 보낸다. 이 장면은 말 그대로 중력을 무시할 만큼 퀴어한 상상력의 결정체다.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분노의 질주 7’에 나온다. 드웨인 ‘더 락’ 존슨이 병원에서 깁스를 한 채 누워 있다가, 다시 싸워야 한다는 걸 깨닫고는 근육을 뽐내며 깁스를 부수며 말한다. “아빠는 일하러 가야 해(Daddy has to go to work).” 성 역할의 퍼포먼스가 이보다 더 노골적일 수 있을까?

이름 역시 퍼포먼스의 일부다. 드웨인 더글라스라는 이름의 남성이 ‘더 락’이라는 예명을 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보랏빛 향기가 감돈다. 이 시리즈의 중심 인물 도미닉 ‘돔’ 토레토를 연기하는 배우는 마크 싱클레어지만, 그의 예명은 ‘빈 디젤’이다. 만약 내가 드래그 킹이 된다면, 나도 그런 이름을 쓰고 싶을 것이다. ‘빈 디젤’, ‘본 바이셉스’, ‘토미 테스토스테론’ 같은 이름 말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진짜로 특별한 이유는 “가족”이라는 주제 때문이다. 돔 토레토는 영화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수십 번 반복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족은 전통적인 혈연 중심 가족이 아니라, 서로를 끝까지 지지하는 친구 집단이다. 이는 다소 유치하게 들릴 수 있지만, 동시에 급진적이고 퀴어한 개념이기도 하다.

나는 20년도 전에 커밍아웃했다. 당시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동성애 혐오가 만연했다. 다행히 내 가족은 항상 내 편이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다. 2013년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LGBT 중 약 39%가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로부터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택한 가족’을 찾아내고, 가족의 의미를 재정의하는 일은 퀴어 문화의 핵심이었다.

최근에는 아내와 함께 네 살 된 아이를 키우며,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는 정자 기증자를 통해 태어났고, 이로 인해 여러 이복형제가 생겼으며 우리는 그 가족들과도 소통하며 지내고 있다. 우리는 아이에게 모든 가족이 다르다는 걸 가르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접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이성애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모델이 얼마나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2023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7%만이 결혼한 동성 부부가 자녀를 함께 키우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남녀 각각의 아이가 있는 전형적인 가족 모델은 여전히 만화에서부터 광고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이상적인 모습으로 제시된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그 어떤 누가 보더라도 ‘각성된(woke)’ 영화로 불릴 일은 없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에서 인종과 배경의 다양성을 보여주며, 다양한 관객층의 사랑을 받아왔다. 2015년 빈 디젤은 “관객은 어떤 국적이든 상관없이 자신이 그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이 바로 ‘분노의 질주’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정치적 메시지를 억지로 들이미는 대신, 그저 일관되게 사랑과 연대의 가치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