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먼지를 일으키며 코너를 맹렬하게 도는 경주용 자동차. 웅덩이를 지날 때마다 사방으로 거친 물보라가 튀어 오른다. 스크린 너머의 우리는 이 역동적인 장면에 자연스럽게 몰입하지만, 사실 이 차와 배경은 전혀 다른 영상 조각들을 이어 붙인 것이거나 현실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 컴퓨터 그래픽일지도 모른다. 영화 산업에서 이런 시각 효과(VFX)의 빈틈을 메우는 작업은 그동안 아티스트들의 혹독한 수작업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이 지난한 노동의 풍경을 완전히 뒤바꿔놓으며 영화 속 가상 세계를 더욱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
영화 속 현실을 창조하는 AI 시각 기술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UNC-Chapel Hill)의 컴퓨터 과학 박사 과정 학생인 루차오 치(Luchao Qi)는 컴퓨터 비전을 활용해 VFX 아티스트들의 짐을 덜어주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챗GPT나 클로드 같은 자연어 처리 알고리즘이 텍스트 생성에 집중하는 반면, 그는 세상을 시각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2025년, 영화 ‘스타워즈’의 특수효과를 담당하며 업계를 선도해 온 루카스필름 산하 ILM(Industrial Light and Magic)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그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그가 개발한 ‘OVER++’는 사용자가 간단한 텍스트를 입력하고 영역을 지정하기만 하면, 물보라나 먼지 같은 환경적 상호작용을 영상에 자연스럽게 입혀내는 프로그램이다. 수일에서 수주가 걸리던 작업을 단 몇십 분 만에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시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50장 남짓한 셀카만으로 배우의 나이를 20대부터 90대까지 자유자재로 바꾸는 프로그램 ‘마이타임머신(MyTimeMachine)’ 역시 그의 작품이다. 번거로운 특수 분장 없이 소프트웨어만으로 시간을 넘나들며 시각적 한계를 돌파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첨단 기술의 목적이 인간 아티스트를 화면 밖으로 밀어내기 위함은 아니다. 로니 센굽타 조교수는 이 생성형 AI가 전문가의 정교한 통제하에 사용될 때 수작업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동시에 창의적인 권한을 완벽히 보장한다고 강조한다. AI의 창조물이 인간의 눈을 감쪽같이 속일 만큼 정교해졌지만, 이를 잡아내는 AI 탐지 소프트웨어 역시 발맞춰 진화하고 있어 딥페이크 같은 기술의 오남용을 막는 방어선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야생, 자동차라는 ‘치명적’ 위협
화면 속 세상은 이처럼 고도의 기술을 통해 끊임없이 진보하며 모든 변수를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시선을 스크린 밖 진짜 도로 위로 돌려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영화 속에서 멋진 물보라를 일으키던 자동차는 현실의 작은 생명들에게 통제 불가능한 재앙 그 자체다.
인구 66만 명의 제주도는 서울에 이어 도로 보급률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중산간 지역까지 아스팔트가 촘촘히 깔려 있다. 이 거미줄 같은 도로망 위에서 노루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는 일은 일상이다. 그나마 덩치가 큰 동물들은 통계로라도 남지만, 양서류나 파충류 같은 작은 존재들은 차가운 길 위에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곤 한다.
동화 ‘알리트: 어느 작은 개구리 이야기’는 바로 이 묵직한 현실에서 출발한다. 알을 등에 업고 다니며 헌신적으로 돌보던 수컷 산파개구리가 차에 치여 목숨을 잃고, 물살에 휩쓸려 간신히 태어난 어린 올챙이는 연어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트’라고 소개한다. 아빠의 목숨을 앗아간 무서운 자동차를 동물들은 치명적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레탈(létal)에서 따온 ‘레탈리트’라 불렀다. 어린 개구리는 자신이 아는 이 유일한 단어에서 죽음의 흔적을 지워내고 생명의 이름인 ‘알리트(Alyte)’만을 남겼다. 끝내 살아남겠다는 연약한 존재의 결연한 선언이다. 프랑스어로 산파개구리를 뜻하기도 하는 이 이름은, 죽음의 공포를 넘어 생명력을 긍정하는 상징으로 거듭난다.
‘해결’이 아닌 ‘풀어야 할 매듭’으로 얽힌 세상
기술 중심의 사회에서 꽉 막힌 경로나 비효율적인 작업 과정은 어떻게든 깔끔하게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다. 도로를 뚫어 속도를 높이고, AI를 도입해 위험과 지연을 제거한다. 그러나 소쩍새로부터 알리트를 숨겨준 거대한 참나무 ‘악손’의 입을 빌려 책은 다른 이야기를 건넨다. 개구리라는 존재에는 ‘풀리지 않는 매듭’이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야생의 삶이란 애초에 완벽하게 통제되거나 깔끔하게 해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스크린 속 환상을 완벽하게 빚어내는 마법 같은 기술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가면 언제든 포식자의 위협과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가 공존하는 위태로운 생태계가 펼쳐져 있다. 비인간 존재들과 얽히고설킨 채 살아가는 이 생태적 삶은 무 자르듯 깔끔한 해법으로 정리될 수 없다. AI가 영화의 모든 장면을 한 치의 오차 없이 통제해 내더라도, 생태계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매듭 앞에서는 그저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완벽한 가상 현실을 창조하는 기술의 눈부신 발전 이면에서, 묵묵히 제 몫의 위험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알리트’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은 여전히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