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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새로운 콘텐츠 전략: 파리의 로맨스와 DC 히어로의 스트리밍 안착

클리셰를 정면으로 껴안은 연말 로맨틱 코미디

넷플릭스의 신작 영화 ‘샴페인 프라블럼(Champagne Problems)’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보여주며, 주연 배우 밍카 켈리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스스로가 가진 진부함을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파리의 크리스마스 풍경, 크레페와 마카롱으로 대변되는 미식, 그리고 세느강변에서의 입맞춤 같은 ‘파리에서의 크리스마스’ 공식이 가득하다. 마치 샴페인 코르크가 터지듯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유머와 함께 이 영화는 관객에게 익숙한 즐거움을 선사하려 한다. 이야기는 경영난에 빠진 유서 깊은 와인 농장 ‘샤토 카셀’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와인 농장 인수전을 둘러싼 갈등과 로맨스

뉴욕 음료 대기업의 인수 합병 담당자인 시드니 프라이스(밍카 켈리 분)는 샤토 카셀의 소유주인 위고 카셀을 설득하기 위해 프랑스로 파견된다. 그녀의 임무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계약을 따내는 것이다. 경쟁자들의 면면은 까다로운 파리지앵 브리지트 로랑, 엄격한 독일인 오토 몰러, 그리고 억만장자 아버지를 둔 파티광 미국인 로베르토 살라자르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마크 스티븐 존슨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홀마크 채널 스타일의 감성과 장르적 특성을 가볍게 비트는 풍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시도한다. 시드니와 앙리(톰 워즈니츠카 분)가 파리의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이나, 와인을 마시며 밤을 보낸 뒤 앙리가 바로 그 농장의 상속자임이 밝혀지는 전개는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영화적 허용과 의외의 유머 코드

영화 속 모든 우연과 갈등은 연말 로맨스의 빠른 전개를 위해 인위적으로 배치된 느낌을 주지만, 이는 존슨 감독의 의도된 연출로 보인다. 눈 덮인 스노우볼 속에 갇힌 듯 완벽하게 연출된 파리의 풍경과 밍카 켈리의 환한 미소는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답다. 다만 주연 배우들 간의 화학 작용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조연들이 빚어내는 유머는 의외의 타율을 자랑한다. 프랑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영화 ‘라따뚜이’에서 본 게 전부라고 고백하는 로베르토나, 독일에서는 ‘다이 하드’를 비극으로 간주하며 한스 그루버를 불쌍하게 여긴다는 오토의 대사는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재미를 준다. ‘샴페인 프라블럼’은 끈적한 캔디 지팡이처럼 전형적인 작품이지만,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에 가볍게 즐길 거리를 찾는 시청자들에게는 적절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스트리밍으로 귀환한 비운의 히어로, 블루 비틀

한편,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작품인 DC의 ‘블루 비틀’이 넷플릭스에 상륙하며 스트리밍 영화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있다. 2년 전, DC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라는 격랑 속에 있었다. 제임스 건과 피터 사프란이 새로운 DC 스튜디오의 수장으로 임명되면서 기존의 확장 유니버스(DCEU)는 사실상 종료 수순을 밟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2023년 개봉 예정이었던 ‘샤잠! 신들의 분노’, ‘플래시’, ‘아쿠아맨과 로스트 킹덤’ 등은 흥행 참패의 위기에 놓였고, ‘블루 비틀’ 역시 그 사이에 낀 애매한 위치의 기원 이야기로 남을 뻔했다. 제임스 건은 주인공 하이메 레예스(솔로 마리두에냐 분)가 새로운 DC 유니버스(DCU)로 넘어올 가능성을 시사하며 전임 경영진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2026년 이후의 새로운 라인업이 확정된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극장 개봉과 스트리밍 사이에서의 생존기

흥미로운 점은 ‘블루 비틀’이 애초에 극장용이 아닌 스트리밍용으로 기획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초 워너브라더스는 HBO 맥스 가입자 유치를 위해 중소규모의 슈퍼히어로 영화들을 제작할 계획이었으며, ‘블루 비틀’은 그중 하나였다. 같은 의도로 제작되었던 ‘배트걸’이 세금 감면을 위해 폐기 처분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블루 비틀’은 살아남아 극장 개봉까지 이루어졌다. 이는 라틴계 히어로가 주연을 맡은 첫 실사 영화라는 상징성이나 내부 시사에서의 긍정적인 반응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록 마이클 키튼의 배트맨이 출연했던 ‘배트걸’보다 인지도는 낮지만, 조지 로페즈의 인상적인 조연 연기가 더해지며 전 세계 관객과 만날 수 있었다.

변화하는 블록버스터 배급 전략의 단면

‘블루 비틀’의 사례는 스트리밍 전용 슈퍼히어로 영화가 산업적으로 정착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아무리 규모가 작은 슈퍼히어로 물이라도 제작비가 상당하기 때문에 극장 티켓 판매 수익 없이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힘들다. 마블조차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한 드라마들이 수익성 면에서 고전하고 있으며, 워너브라더스 또한 슈퍼히어로 영화는 대형 스크린을 위한 이벤트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건이 이끄는 새로운 DC 체제 역시 TV 쇼는 스트리밍으로, 영화는 극장으로 명확히 구분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만나는 ‘블루 비틀’은 잠시나마 스트리밍 서비스가 중저예산 블록버스터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시기를 상징하는 작품이자, 그 자체로 준수한 오락 영화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By 박서연 (Park Seo-y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