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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부활, 그 찬란한 궤적: 박해일의 ‘괴물’부터 2026년 극장가의 대격변까지

때로는 과거의 평범해 보였던 한 장면이 현재의 거대한 흐름을 설명하는 완벽한 복선이 되기도 한다. 시계를 잠시 2000년대 중반, 한국 영화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시절로 되돌려보자. 당시 29세였던 배우 박해일은 2000년부터 5년여간 교제해 온 26세의 프리랜서 방송작가 서윤선 씨와 3월 12일 오후 1시 강남 반포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스크린에 발을 들인 그는 ‘살인의 추억’, ‘인어공주’, ‘연애의 목적’, ‘소년, 천국에 가다’ 등을 거치며 대체 불가한 연기력을 입증했고, 데뷔 이후 줄곧 여자친구의 존재를 당당히 밝혀온 순정파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결혼식을 올리던 이 시기에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한창 촬영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훗날 한국 극장가의 생태계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이 영화의 배급사가 바로 ‘쇼박스’였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흐른 2026년 현재, 한국 영화계는 ‘괴물’이 개봉했던 그 시절의 에너지를 다시 한번 극장가에 뿜어내고 있다. 사실 지난 5년은 영화계 종사자들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늪과도 같았다. 미국의 제임스 카메론이 4억 달러를 쏟아부은 대작들이 스크린을 휩쓸고 지나가는 동안,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은 국내 멀티플렉스들은 유독 회복이 더뎠다. 2024년까지만 해도 미국과 영국이 팬데믹 이전의 70~80% 수준을, 프랑스와 독일, 일본이 거의 100% 가까이 회복한 것에 반해 한국의 티켓 판매량은 고작 53%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영화진흥위원회가 수요일 발표한 분기별 결산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한국 극장가는 무려 3,180억 원(약 2억 1,500만 달러)의 매출과 3,190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며 2020년 이후 가장 뜨거운 1분기를 기록했다.

이러한 극적인 부활의 선봉장 역할은 온전히 한국 영화들의 몫이었다. 올해 1분기 한국 영화는 2025년 대비 두 배 이상 덩치를 키우며 2017년에서 2019년 사이 1분기 평균 매출의 94.5% 수준까지 단숨에 도달했다. 전체 매출 점유율을 보더라도 전년도 53.5%에서 73.4%로 수직 상승하며 극장가를 완전히 장악했다. 반면 외화들은 3년 연속 1분기 하락세를 면치 못하며 전년 동기 대비 9%나 매출이 빠졌다. 그 중심에는 폐위된 왕과 그를 감시해야 하는 촌장 사이의 기묘한 유대감을 밀도 있게 그려낸 사극 ‘왕의 파수꾼(The King’s Warden)’이 있다. 이 작품은 개봉 이후 무려 1,518억 원의 매출과 1,57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이 전대미문의 흥행 돌풍을 이끈 주역이 20년 전 ‘괴물’로 한국 영화의 새 장을 열었던 배급사 쇼박스라는 점은 꽤나 상징적이다. 쇼박스의 홈런은 단발성에 그치지 않았다. ‘왕의 파수꾼’ 이전에는 문가영과 구교환이 옛 연인으로 분해 수년 후 다시 얽히는 가슴 시린 로맨스 ‘우리가 우리였을 때(Once We Were Us)’를 선보였는데, 이 영화는 새해 연휴 기간 동안 할리우드 텐트폴 무비인 ‘아바타’ 속편을 일일 박스오피스 정상에서 끌어내리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 멜로 영화 한 편이 쇼박스의 금고에 조용히 더한 수익만 244억 원, 관객 수는 260만 명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쇼박스는 올해 1분기에만 총 1,763억 원을 벌어들이며 국내 박스오피스 전체 매출의 55.4%를 쓸어 담는 엄청난 장악력을 보여줬다. 이는 ‘아바타: 불과 재(Avatar: Fire and Ash)’와 ‘주토피아 2’의 쌍끌이 흥행을 노렸던 2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가 기록한 431억 원의 네 배가 넘는 압도적인 수치다. 분기별 박스오피스 2위로 밀려난 ‘아바타: 불과 재’는 265억 원의 매출과 218만 명의 관객을 기록했는데, 여기서 분석해 볼 만한 대목이 있다. 이 영화가 거둔 수익의 절반 가까이는 일반 티켓보다 30~50%가량 비싼 특수관(Premium-format screens) 관람료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화려한 시각효과로 무장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비싼 티켓값으로 간신히 체면치레를 하는 동안, 한국 영화는 탄탄한 서사와 인물이 주는 본질적인 힘만으로 다시 한번 대중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박해일이 ‘괴물’로 스크린을 누비던 그 시절처럼, 한국 영화는 또 한 번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낸 셈이다.

By 박서연 (Park Seo-yeon)